임화라전도사의 전도전략과 분석 -
임화라 전도사의 전도전략은 말씀과 적용에 의한 사랑입니다
임화라 전도사는 지난 10년간 많은 사람을 주께 인도하며 전도와 관련한 많은 사역들을 감당하였습니다 주일학교 교사로서 그의 역할은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었으며 5명에서 시작한 반인원을 35~40명까지 성장시키며 전체 출석인원의 50%를 차지할 만큼 뚜렷한 두각을 나타내며 열심히 봉사하였습니다 또한 권찰로서 구역관리를 강화하여 6년연속 2~3배가를 달성하였고, 구하라 권사님과 함께 4년연속 전도왕을 앞다투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특히 지난 2004년에는 모혜자권사와 함께 주간 평균 출석 130여명을 꾸준하게 달성하며 1,000명교회로 성장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그가 섬기는 여전도회 기관에서도 높은 참여율을 기록하며 그가 움직이는 모든 곳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여주는 이른바 "임화라효과" 가 나타났습니다
1. 임화라 전도사의 성장기
임화라 전도사는 1971년 5월 전라남도 고흥군 금산면 앞바다 작은섬 연홍도에서 태어났습니다 연홍도는 그 크기가 너무나 작아 지도책에도 잘 표기가 되어 있지 않을 만큼 아주 작은 섬이지만 지금은 폐교되어 연홍미술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50년 역사와 전통이 있는 연홍초등학교가 있고 보건지소와 연홍교회가 각각 위치해 30여가구 주민들의 편의시설이 되고 있습니다
섬사람들의 하루일과는 새벽 1시에 시작되고 오후 8시에 끝나는 거의 24시간 연속적인 노동이 다반사였습니다 임화라 역시 어린 나이에 공부만 하며 지낼 수 없는 형편이었기에 자매들과 함께 집안일을 도와야 하는 일들을 감당하였습니다 그 와중에서도 집에서 유일하게 교회를 출석하였고 중등학교시절부터 주일학교 교사와 찬양대 등 교회의 중요한 사역들을 감당하며 성장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교회로 인하여 집안일을 게을리 하거나 요령을 피우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욱더 열심히 일함으로서 교회에 대한 좋은 인식을 갖게 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학교생활에 있어서도 중고등학교를 장학생으로 보내면서 학우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하는 사회생활을 집으로 부터 400km 이상 떨어져 있는 경상남도 울산의 현대중공업에 취업이 되어 6년 기간 회계부에서 근무하였으며 그곳에서도 신앙생활을 게을리 하지 않고 울산 큰빛교회 찬양대와 주일학교 등에서 봉사하며 교회의 사역들로 부터 잠시라도 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며 교육의 열정이 남달랐던 가정 환경속에서 바르고 선하며 진실되게 성장함으로서 바른 가치, 바른 교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거칠고 강한 환경의 연홍도 섬사람들은 의외로 각종 바다 미신 등 토테미즘을 신앙하지 않고 기독교와 무종교를 이루면서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하나의 대가족처럼 상호 동반자 관계라는 의식이 강해 있었습니다 그것은 마을 거주민 전체가 동일한 직업을 소유하고 있고 동일한 업무와 생활을 하고 있는 특징에서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협력관계와 신뢰관계 속에서 성장한 임화라 전도사는 긍정적이고 평화적인 환경에서 정신적인 영향을 받았으며 또한 공동의 이익을 발현하는 동일 구역내의 해양권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분쟁과 오해로 부터 화해와 조정자의 역할을 부친께서 담당함으로서 그에게 바다와 같은 넓은 마음을 가지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짐작하는 것입니다
2. 임화라 선생님과 임화라 집사님, 그리고 임화라 회장님
- 갈등과 조정자의 역할을 하다
임화라 전도사의 가치는 그가 화명제일교회에 등록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그의 교회내에서의 역할은 항상 중요한 포지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은석 목사님 부임보다 1개월 늦은 교회 등록과 정은석 목사님과의 만남은 그에게 중요한 역사의 서막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등록과 동시에 주일학교 유초등부 교사와 할렐루야 찬양대를 맡아 열심히 봉사하였으며 더 나아가 교회의 공식적인 중창단인 온맘찬양대 대원으로서 조정자 역할을 잘 감당해 왔습니다 특히 주일학교 교사로 섬김을 시작한 이래 주일학교의 교세를 급성장시키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대부분의 주일학교 학생들이 임화라 선생님과 같은 반이 되고 싶어서 줄을 설 정도였고 5명으로 시작한 지 1년만에 40명의 반원으로 성장했는데도 학생들의 선생님에 대한 사랑과 관심으로 인해 분반이 불가능할 정도였습니다
그러한 주일학교의 분반공부와 지도방식에 있어서 다른 선생님들과 구별되는 점이 있다면 임화라 선생님은 항상 언제 어디서든지 출석부와 생활기록부를 핸드백속에 가지고 다녔으며 생각날때 마다 전화와 이메일, 문자메세지등을 통해 학생들과 생각을 나누며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상담자와 우정이 담겨있는 친구 역할을 지속적으로 수행해 왔다는 점입니다
그 중에 소외받은 학생들과 편부모 학생들은 임화라 선생님을 친어머니 처럼 생각할 정도로 각별한 관계를 유지함으로서 그들이 또 다른 도태자가 되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와 정성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그의 개인적인 재정적 투자 또한 뒷받침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관계형성은 학생들이 중고등부에 가서도 교회를 이탈하지 않는 강한 성향을 보여 주었고 대학에 이르기 까지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을 잃지 않는 것을 목격하였습니다 지금도 그의 제자들은 교회의 중심 세대로 성장하여 찬양단과 교사로 열심히 봉사하고 있는 점에서 그의 진심에서 나온 관계적 지도는 다른 교사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각양각색의 다양성을 가지고 있는 온맘찬양단은 교회 음악이라는 동일성 속에서도 심리적 갈등은 항상 존재해 왔습니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내면의 갈등속에서 상호 존중과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조정자가 필요한 시점에 임화라가 그 역할과 조정을 담당함으로서 찬양단은 보다 음악에 열중하며 서로를 향한 존중과 사랑을 가지게 하였던 것입니다
지식과 자존심의 극한 내면적 상황이 항상 내재되어 있는 여전도회는 외면적으로는 서로 웃고 즐기며 하루를 보내는 듯 하지만 내면적으로는 질투와 오해가 존재하는 특별한 기관인 것입니다 그래서 여전도회 기관은 끊임없이 분회되고 분류되어 소규모 집단화 함으로서 그러한 문제를 보다 빠르고 신속하게 해결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입니다 5~6명이 모이던 갖 결혼한 여전도회의 모임을 보다 다양화하고 개별적인 접근과 상호이해 증진을 위한 큐티와 커리큘럼을 구성함으로서 15~20명이 모이는 기관으로 활성화 하였습니다 또한 자원봉사활동을 통하여 교회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거나 물질적인 지원을 함으로서 회원의 필요성과 목표의식을 고취시켰습니다
임화라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하나님앞에서 진실하자는 것입니다 때로 억울함과 슬픔과 오해가 있어도 그것을 억지로 풀려고 애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먼저 기도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다시한번 생각하고 배려함으로서 그 문제의 해결점을 찾아 조금씩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 있고 때로는 지금 바로 클로징해야 하는 프로세스가 존재할때 매 건 마다 매뉴얼을 구성한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는 습관을 이룩하였다는 것입니다
또 한 교회도 하나의 사람사는 세상이라는 것을 인정함으로서 이러한 문제 해결의 근원지를 찾기 위한 캐내기식 접근을 지양함으로서 되도록이면 문제를 덮고 이해하는 것으로 조정하였다는 것입니다 우유부단하고 편향적이라는 이야기들과 악의적 공격성향들이 존재할 때 그것을 일일이 따지는 것보다 당사자인 내가 잘못했다고 공표함으로서 더 이상의 진전을 없게 하는 대의를 지켜 나갔음을 지난 6년의 세월을 통해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3. 임화라 집사의 전도와 구역원 관리
임화라 집사는 지난 6년간 2000명 정도를 전도한 것으로 통계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 가운데는 동원인력이 대다수이고 교회 정착율을 높이는 수치는 제한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화라 전도사의 전도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그의 전도에는 다른 전도왕들과는 다른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한 번 임화라 집사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그와 전혀 다른 반대의 상황으로 다시 만나는 경우는 현재까지 거의 없었고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임화라와 만나면 그 사람은 임화라를 좋아하게 되어있다"라는 공식이 적용될 정도로 이러한 유형은 흔히 발견되었고 전도와 학습을 통하여 이러한 지속성은 더욱 더 두드러지는 경향을 보여 주었습니다 특히 할머니 들은 임화라를 마치 자신의 딸과 친손녀 처럼 대해 주었고 그를 기다리는 사람들까지 늘어났습니다 가장 큰 예로 화명동 벽산 아파트 노인정의 경우, 거기에 살고 있을 때에는 물론 거기를 떠난지 수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임화라를 혈육처럼 기억하며 아무런 조건없이 교회를 나와 예배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특별한 만남도 아니고 지극정성이 대단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할머니들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해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음식을 함께 만들며 시간을 보내 준 것이 그들에겐 너무나 고맙고 친절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일회성이 아니라, 물질로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다가가서 그들속에서 그들과 함께 동행하였다는 것이 그들에겐 너무나 소중하고 중요한 의식이 되었던 것입니다 외롭고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 사람들에겐 돈도 중요하지만 말동무와 같은 친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임화라는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용하지 않고 진심으로 다가가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임화라의 전도는 전략과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이었고 삶의 적용이었던 것입니다 교회속에서 존재하는 말씀을 생활속에서 적용함으로서 또한 그러한 적용적 가치를 생활화함으로서 자연스럽게 전도로 연결된 중요한 교훈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도방식을 임화라 집사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것은 결코 아닙니다 자신의 평소 습관대로 삶을 산 것이 바로 그들에게 아름다운 선행으로 전달되었던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와 이웃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불신자들이지만 임화라 집사를 친자매처럼 너무나 사랑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에게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그들은 불신자들이지만 임화라 집사에게 기도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들 또한 그들에게 말씀을 증거할때 그들은 임화라의 생각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들어 줄려고 애쓰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결국엔 진심이 승리한다"는 원칙이 말이 아니라 삶에서 묻어 남으로서 사람들은 "임화라" 라는 한 인간을 좋아하고 신뢰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굳이 하나님의 말씀을 강요하거나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그의 삶을 보여주며 전해 준 것이었습니다 임화라 집사에게 있어서 지금의 상황은 경제적으로 심히 어려운 지경에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하나님을 신앙하는 불변의 삶을 선택하였습니다 모자라는 생활비의 일부를 떼내어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전심으로 복음에 사용하였으며 돈 한푼 없는 수일을 보내면서도 결코 비관적이거나 원망하지 않는 삶을 체험하며 살았습니다
그의 하나님에 대한 일관된 신앙의 힘은 결국 70년 세월을 무종교 원칙으로 삼았던 시부모를 전도하는 역할 을 하였습니다 성격이 강하고 자존심 하나로 인생을 살아오신 시아버지에게 그가 전한 것은 사랑이었습니다 다른 가족들은 모두 부친을 두려워 하며 경멸과 미움을 쏟아 보낼때 임화라는 일관된 심정으로 사랑을 보내주었던 것입니다 그 어떠한 모습속에서도 일관된 원칙을 잃지 않고 건강을 염려하며 진심으로 다가섰던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일관된 삶의 적용이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철옹성인 시아버지를 회심케 하였고 그분들은 지금 구포제일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임화라로 인하여 변화를 받은 시아버지는 자신이 교회를 다닐 뿐만 아니라 예수를 믿지 않는 장남에게도 교회를 다닐 것을 여러번 강조하였습니다
인생을 철학관에 맡기며 살고 있는 불쌍한 사람에게 진심으로 호소하며 "똑같은 사람에게 의지하여 당신의 인생을 맡기지 말라" 고 눈물로 호소하는 그의 진심을 바라본 40대 주부가 하나님을 만나고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 하게 되었으며 지금은 친자매처럼 서로 아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처음엔 그를 오해하였던 사람들, 세월의 흐름속에서 진실이 통하여 졌고 그를 통하여 새로운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는 것 - 오늘날 말씀이 사라진 교회내에서 하나님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불신자들은 끊임없이 존재하고 있음에 가슴아파 하며 자신의 일처럼 기도하고 있습니다
임화라 집사의 구역관리 또한 사랑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그 사람의 문제를 따지고 묻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증거하고 보여 줌으로서 서로 친구가 되게 하고 그들 스스로가 마음을 열게 함으로서 구역은 성장하고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팬처럼 생겨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임화라 집사가 이러한 원리를 이용하고 적용할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시도한 것이 아니라 그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진실되게 보여 주려는 삶 그 자체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은 쇼다"라고 외치는 그 속에서 임화라 집사는 오늘도 여전히 인생은 하나님 앞에서 뛰어노는 어린아이와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임화라 집사에게 있어서 전도란 말씀과 적용인 것입니다 전략이 아니라 진심으로 진실되게 살아가는 삶 그 자체인 것입니다 인생은 때로 어려움을 우리에게 안겨다 줍니다 그때마다 임화라 집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럴수록 하나님께 의지하는 습관을 생활화 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이를 통하여 임화라 집사는 성령을 확신하였고 그의 신앙은 더욱 더 굳건히 세워져 나갔습니다
4. 임화라의 또 다른 인생, 전도사의 길
임화라 집사 스스로가 전도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같은 교회에 다니던 허두임 전도사님과 이득자 전도사님이 사임을 하기전 부터 수년동안 전도사의 길을 준비하라고 끊임없이 요구되어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그러한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크게 생각하며 준비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지난 후의 일이지만 하나님의 계획에 의하여 평신도신학과 큐티와 말씀공부 등 여러가지 훈련과정을 통하여 조금씩 준비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어느 정도 완료되었지만 본 교회에서의 역할과 사역들에서 차지하는 부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고민을 않할 수 가 없었습니다 그러한 고민을 잠재우며 도와주신 분은 허두임 전도사님과 이득자 전도사님이었습니다 그분들의 도움과 은혜로 말미암아 임화라 전도사는 구포제일교회 전도사로 가는 축복을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뿐만아니라 홍모가 여섯살로 너무 어려서 가족들의 동의가 필요했습니다 가족들 모두가 크리스챤이고 다들 교회생활을 중심으로 생활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것이 일방적으로 진행될 수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많은 기도와 고민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은 하나님 앞에서 무조건 복종하며 상호 협력할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더우기 전도사 생활은 근무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초상과 병원심방같은 돌발상황도 빈번하여 임화라 전도사는 더이상 가족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는 것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모든 현실을 가족들 모두가 지원하고 기도해야 할 당위성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지나온 10개월 우리는 현재 서로를 도와가며 안정적인 시스템을 갖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신앙을 지키며 서로 협력자가 되고 중재자가 되어 서로에게 공격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직 어린 홍모와 자녀들이 크게 다치거나 불의의 사고로 인한 돌발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항상 기도하고, 자녀를 축복함으로서 세상의 범죄와 질병과 고통으로 부터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시작에 불과한 것이므로 임화라에 대한 분석과 전망은 섣부른 것일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온 일련의 삶을 통하여 분명한 것은 임화라에게 나타난 "말씀과 적용" 이 두가지 특징이 변하지 않고 지속될 수 있도록 항상 기도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기대하고 있습니다 화명제일교회에서 너무나 잘했다는 임화라 전도사가 구포제일교회에서는 얼마나 잘 할 것인지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 하나님의 선택에 따라 움직인 임화라 전도사가 사람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진실되고 바르게 사역을 감당하는가 하는것이 중요한 과제가 될 것입니다
또한 그의 가족들이 지금처럼 임화라 전도사의 사역을 계속 지원하고 함께 동역하며 불변의 역할을 감당해 낼 것인가 하는 것도 빠트릴 수 없는 과제가 될 것입니다 현재 중학교 3학년인 큰 딸이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어린 홍모의 일차 보호자는 아빠가 될 것입니다 유치원 선생님의 역할과 주위 인맥들의 도움은 교회와 인접하여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이 모든 핵심은 문제해결의 일등이신 하나님과의 절대적인 관계형성인 기도의 필요라 생각됩니다
지금까지 전도와 구역관리에서, 주일학교 교사와 찬양대와 기관에 이르기까지 좋은 역할을 감당하였던 임화라 전도사가 구포제일교회에서도 수많은 불신자를 전도하고 소외받은 교인들을 위하여 사랑을 베풀고 그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며 또다른 문제의 중요한 중재자로서의 사역을 아름답게 감당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또한 스스로를 더욱 더 낮춤으로서 겸손과 자비로움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선한 일군으로서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가 새로운 길을 선택한 것은 영화로움과 존경받는자의 위치에서 부귀의 손을 잡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언제나 모자람과 나약함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결정이었다는 것을 항상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5. 임화라 전도사 - 새로운 스승이신 이성구 목사님을 만나다
참으로 다행스러운것은 지금 임화라 전도사는 구포제일교회에 새롭게 부임하신 이성구 목사님을 만나게 됨으로서 그에게는 훌륭한 목사님을 보필 할 수있는 좋은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성구 목사님은 부임과 동시에 70년만에 교회를 찾은 시부모님의 가장 중요한 조언자요 친구가 되셨으며 교회의 바른 정착을 위해 헌신함으로서 목회자상의 바른 철학을 몸소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또한 두 분의 부목사님과 남여 전도사님들의 사랑과 배려속에서 첫번째 사역을 잘 감당 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구포제일교회는 지난날의 아픔을 딛고 새롭게 부흥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떠났던 사람들이 하나씩 복귀하고 있으며 매주마다 새로운 교인들이 등록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제 2의 개척기를 맞는 구포제일교회는 이성구 목사님의 강력한 추진력과 함께 북구지역의 영혼을 깨워 나갈 것으로 기대 합니다 중단되다 시피한 새성전건축이 공정의 원칙을 따라 제때 이루어짐으로서 구포제일교회의 화명동시대를 열어가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이로서 구포제일교회는 그 옛날의 명성을 회복하고 양산을 포함하는 북구지역의 영적 중심지 역할 을 감당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이러한 교회의 성장을 위하여 임화라 전도사가 지금까지 해 왔던 말씀과 적용이라는 중요한 중재자의 역할을 더욱더 잘 감당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전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복음을 전할 때의 효과적인 의사소통 방법 (0) | 2009.07.25 |
---|---|
[스크랩] 전도하러 나갔을 때 부딪치게 되는 반대질문 30가지 (0) | 2009.07.25 |
[스크랩] 전도를 방법론적인 입장에서 찾으려는 기독교인을 위한 제언 (0) | 2009.07.25 |
[스크랩] 인근지역 타교회신자를 타겟으로하는 VIP스카웃전쟁을 해결할 전도전략은? (0) | 2009.07.25 |
[스크랩] 전도전략에대한특강자료입니다 (0) | 2009.07.25 |